이분척추(spina bifida)는 신경관 결손(neural tube defect, NTD)의 한 유형으로, 배아 발생 초기에 신경관이 제대로 닫히지 않아 척추뼈와 척수가 함께 기형을 보이는 선천 질환이다
[2][3]. 가장 심한 형태인 척수수막류(myelomeningocele, MMC)는 하지의 근력 약화 또는 마비를 일으키며, 결손 부위의 높이에 따라 마비의 정도가 달라진다
[1][2]. 문제의 아동이 엉덩관절과 무릎관절을 굽힌 채 앉아 있고 다리 움직임이 거의 없는 것은 하지 마비 또는 심한 근력 저하를 시사하며, 이는 척수수막류의 대표적인 운동장애 소견과 일치한다.
척추 아래쪽의 수술 흉터는 출생 직후 시행한 척수수막류 봉합술이나 관련 신경외과적 처치의 흔적으로 볼 수 있다. 또한 고무풍선(라텍스) 접촉 후 두드러기가 나타난 것은 라텍스 알레르기를 강하게 시사하는데, 이분척추 환자에서는 라텍스 노출이 잦은 치료 환경과 면역학적 감작으로 인해 라텍스 과민반응의 빈도가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보기별로 살펴보면, 발달성 고관절 이형성증(developmental dysplasia of the hip)은 고관절 탈구나 불안정성이 주된 소견으로 하지의 전반적인 움직임 소실이나 척추 수술 흉터, 라텍스 알레르기를 설명하지 못한다. 뇌성마비(cerebral palsy)는 중추신경계 손상으로 인한 운동조절 장애가 특징이나, 척추 아래쪽의 국소적 수술 흉터와 라텍스 알레르기 연관성은 낮다. 뒤센형 근이영양증(Duchenne muscular dystrophy)은 진행성 근위약이 특징이지만 5세에 이미 움직임이 거의 없을 정도의 심한 마비를 보이기보다는 가까운 거리 보행은 가능한 경우가 많고, 척추 수술 흉터나 라텍스 알레르기를 동반하지 않는다. 분만마비(brachial plexus birth palsy)는 상지의 마비가 주된 소견으로 하지 마비와 척추 수술 흉터를 설명할 수 없다.
이분척추는 신경학적 결손뿐 아니라 신경인성 방광(neurogenic bladder)으로 인한 요실금, 대변 실금, 정형외과적 변형, 수두증(hydrocephalus) 등 다양한 동반 문제를 일으킨다
[1][2]. 특히 척수수막류는 아놀드-키아리 기형 II형(Arnold-Chiari malformation type II) 및 수두증과 자주 동반되며, 하지 마비가 핵심 신경학적 소견으로 나타난다
[4]. 태아기 수술적 치료는 션트 삽입 필요성을 낮추고 운동 기능을 개선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보고된 이후 적극적으로 시행되고 있다
[3]. 따라서 하지 마비, 척추 하부 수술 흉터, 라텍스 알레르기라는 세 가지 단서가 동시에 나타난 이 사례는 이분척추, 그중에서도 척수수막류의 후유 상태로 판단하는 것이 타당하다.
참고 문헌 (논문 출처)
- [1]
[In utero treatment of spina bifida].일반논문Jouannic JM, de Saint Denis T, Irtan S, Blondiaux E, Guilbaud L. (2026)
- [2]
Advances in the prevention and prenatal treatment of spina bifida.일반논문Sluzala ZB, Furth KE. (2026) · DOI: 10.15190/d.2026.1
- [3]
Advances in Fetal Repair of Spina Bifida Integrating Prenatal Surgery, Stem Cells, and Biomaterials.일반논문Evangelista A, Ruccolo L, Friuli V, Benazzo M, Conti B, Pisani S. (2026) · DOI: 10.3390/biomedicines14010136
- [4]
Neonatal Arnold-Chiari II Malformation: An Imaging-Focused Case Report.케이스리포트Alashqar M, Lubbadeh S, Daraghrmah A, Alashqar A, Khaled Z, Sbeih S, Bdair A, Salman I, Abu Kamesh MI. (2026) · DOI: 10.1002/ccr3.719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