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 그리기 검사에서 숫자
1부터
12까지를 모두 오른쪽 반원에만 배치한 소견은
왼쪽 공간 무시(left unilateral spatial neglect)의 전형적인 표현이다. 공간 무시는 시각, 청각, 촉각 자극을 감지하는 일차 감각 경로나 일차 운동 경로의 손상 없이, 병변 반대쪽 공간의 자극을 인지하거나 반응하지 못하는 신경심리학적 증후군이다. 시계 그리기는 공간 무시를 선별하는 대표적인 검사로, 환자에게 원 안에 숫자를 채워 넣도록 했을 때 병변 반대쪽인 왼쪽 공간을 비워 두거나 모든 숫자를 오른쪽에 밀어 넣는 양상이 관찰된다
[1].
이 소견이
구성 실행증(constructional apraxia)이나
기억력 저하와 구별되는 이유는 오류의 공간적 편측성에 있다. 구성 실행증은 시공간적 조합 능력의 전반적 저하로 그림의 형태가 무너지거나 부분들이 잘못 연결되는 양상을 보이며, 반드시 한쪽 공간에 국한된 오류를 만들지는 않는다. 기억력 저하라면 숫자의 순서나 누락이 불규칙하게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이 환자는
1부터
12까지의 숫자를 모두 기억해 냈고, 단지 그 배치가 오른쪽 반원으로 치우쳤다. 이는 숫자 정보 자체의 손상이 아니라 왼쪽 공간에 대한 표상과 탐색의 결손을 시사한다
[1][2].
병태생리적으로 공간 무시는 우반구, 특히 하두정소엽(inferior parietal lobule)과 측두-두정 접합부(temporo-parietal junction)를 포함한 주의 네트워크 손상과 밀접하게 연관된다. 우반구는 좌우 양쪽 공간에 대한 주의를 배분하는 반면, 좌반구는 주로 오른쪽 공간만 담당한다. 따라서 우반구가 손상되면 왼쪽 공간에 대한 주의 배분이 소실되어도 좌반구가 오른쪽 공간을 계속 처리하므로, 왼쪽 공간에 대한 무시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시계 그리기에서 오른쪽 반원에만 숫자를 배치하는 것은 왼쪽 공간의 표상 자체가 활성화되지 못한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
[2].
급성기 뇌졸중 환자에서 공간 무시는 흔히 관찰되지만, 일부 환자는 수 주 이내에 임상적으로 회복되기도 한다. 다만 급성기에 관찰된 공간 무시가 완전히 사라진 것처럼 보여도, 만성기에는 구성 능력의 저하나 미세한 주의 편향이 지속될 수 있다. 시계 그리기와 같은 구성 과제는 급성기뿐 아니라 만성기의 잔존 손상을 민감하게 반영하므로, 추적 평가에서도 유용한 검사로 활용된다
[2][3].
한편, 표준화된 신경심리검사에서 공간 무시가 명확히 확인되지 않더라도, 복잡한 구성 과제에서는 병변 반대쪽 공간에 선택적으로 그리기 오류가 나타나는 경우가 보고된 바 있다. 이를
선택적 구성 반무실행증(selective constructional hemi-apraxia, CHA)이라고 하며, 공간 무시와 구성 실행증의 경계에 있는 증후군으로 제안된다. 그러나 본 사례처럼 시계 그리기에서 모든 숫자가 한쪽 반원에 밀집되는 명확한 편측성 배치 오류는 일차적으로 왼쪽 공간 무시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
[3].
임상 평가에서는 시계 그리기 외에도 선 나누기(line bisection), 별 지우기(star cancellation), 알버트 검사(Albert test) 등 여러 검사를 함께 시행하여 공간 무시의 유무와 중증도를 판정한다. 특히 행동 부주의 검사(Behavioural Inattention Test, BIT)는 공간 무시 진단에 널리 쓰이는 표준 배터리로, 전통적인 지필 검사와 일상생활 동작을 반영하는 행동 검사로 구성된다. 최근에는 컴퓨터 비전 기반 도구를 활용해 시계 그리기와 같은 소검사의 채점을 자동화하고 진단 일치도를 높이려는 시도도 이루어지고 있다
[1][4].
참고 문헌 (논문 출처)
- [1]
NeBa - Neglect battery: updated norms, new scores, and guidelines of a neuropsychological battery for the assessment of unilateral spatial neglect and associated disorders.가이드라인Crespi F, Rossi I, Diana L, Fortis P, Vallar G, Bolognini N, Ronchi R. (2026) · DOI: 10.1093/arclin/acag018
- [2]
From acute neglect to chronic constructional deficits: parietotemporal contributions to long-term post-stroke impairments.일반논문Song J, Cataldo E, Thomasson M, Saj A, Vuilleumier P, Ronchi R, Sani I. (2025) · DOI: 10.1093/braincomms/fcaf477
- [3]
Selective contralesional constructional hemi-apraxia after unilateral brain damage: Which relationship with unilateral spatial neglect?일반논문Panico F, Arini A, Crisci C, Trojano L. (2026) · DOI: 10.1111/jnp.70006
- [4]
Paper to Pixels: Enhancing Unilateral Neglect Assessment Using the New Computer Vision-Based Tool CANDO.일반논문Beckmann L, Donohoe R, Schmid D, Kiphuth IC, Ludwig K, Schenk T. (2026) · DOI: 10.3390/brainsci160505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