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구한말에서 일제강점기까지의 간호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 마이메르시 MyMerci
간호전문직의 이해
문제

우리나라 구한말에서 일제강점기까지의 간호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해설

① 공중보건 관련 영아보건사업은 일제 강점기 태화여자관에서 시작되었다.

② 우리나라 간호사 교육을 위한 최초의 정규과정은 1903년 정동 보구여관에 개설되었다.

③ 한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실시한 최초의 간호교육 기관은 대한의원이다.

④ 1908년 보구여관에서 우리나라 첫 간호사인 김마르다와 이그레이스가 배출되었다.

⑤ 교육 이상은 높았지만 현실적으로 교사의 수가 적고 교과서가 부족하며 의사소통도 원활하지 않아 주로 임상지도(bedside instruction)를 하였다.

심화 해설

간호 핵심 해설 이 문제는 우리나라 근대 간호의 역사적 뿌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문제입니다.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시기의 간호 발전은 선교사들에 의해 주도되었으며, 이 시기의 주요 기관과 인물을 정확히 아는 것이 핵심입니다.

정답인 선택지 2는 우리나라 최초의 정규 간호교육 과정이 보구여관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말합니다. 1903년, 미국 선교사 로제타 셔우드 홀(Rosetta Sherwood Hall)이 서울 정동에 설립한 보구여관은 한국 최초의 여성병원이자 간호교육의 요람이었습니다. 여기서 시작된 교육은 서양식 정규 간호교육의 시초로 평가받습니다.

오답 분석을 해보겠습니다.
혼동 주의! 공중보건 관련 영아 보건사업은 세브란스병원이 아닌, 태화여자관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태화여자관은 일제강점기인 1926년에 설립된 사회사업 기관으로, 모자보건, 영양 개선 등 공중보건 사업을 선도했습니다.
③ 한국 정부(여기서는 대한제국 정부 또는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공식적으로 실시한 최초의 간호교육 기관은 대한의원 부속 간호원 양성소(1907년)입니다. 태화여자관은 민간 사회사업 기관입니다.
④ 우리나라 첫 간호사인 김마르다와 이그레이스는 대한의원이 아닌, 바로 위에서 언급한 보구여관에서 배출되었습니다(1908년).
⑤ 당시 간호교육은 이론과 실습을 겸비한 이상적인 모델을 추구했지만, 현실은 교사와 교과서가 매우 부족했고, 언어 장벽도 커서 주로 임상지도(Bedside Instruction)에 의존했습니다. '질을 중시하는' 완벽한 교육이 이루어졌다는 설명은 역사적 사실과 맞지 않습니다.

국시 빈출 포인트
기관설립 연도주요 의의
보구여관1903한국 최초의 여성병원, 최초의 정규 간호교육 과정 시작(1903), 최초의 간호사 배출(1908)
대한의원 부속 간호원 양성소1907한국 정부 주도의 최초 공식 간호교육 기관
태화여자관1926일제강점기 공중보건(모자보건, 영아보건) 사업의 중심지

임상 시나리오

간호 임상 실무 가이드 이 역사적 지식은 단순한 암기가 아닙니다. 오늘날 한국 간호의 정체성과 전문직으로서의 자율성, 그리고 공중보건에 대한 관심의 뿌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예를 들어, 지역사회 간호사가 영유아 건강검진이나 산모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할 때, 그 역사적 시작이 태화여자관의 공중보건 사업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알면 업무에 대한 자부심과 의미를 더할 수 있습니다.

선배 간호사의 한마디 "간호사의 길은 험난했지만, 선배님들의 열정이 오늘날 우리의 전문성을 만들었어요. 역사를 알아야 현재의 가치를 더 소중히 여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핵심 개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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